光 前_22

光 前 참 오랜만에 펜을 들어 적습니다. 그간 다망하였든지라 이렇게 서신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세 연말이 다가와 첫눈이 나린다지요. 스치듯 지나간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 구경은 하셨습니까. 금세 눈이 나리면 세상이 하얗게 번질 테고 저는 그 풍경을 원고지 삼아 이렇게 글을쓰며 당신을 그리위할 테지요. 고뿔과 역병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한결같이 답...

光 前 안온하신지요. 히카루상. 요즘 저는 하루하루가 막다른 골목에 있는 듯 갑갑하기만 합니다. 어찌 그러시느냐 연유를 물으신다면 첫째로 엇떠한 의사(@Eui_shin_Jm)가 근래 들어 편집실을 자주 들란 거리드니 제게서 물건들을 하나씩 빼았아가지 무업니까. 연초며, 라이타며, 술이며... 하여 글줄이 나오질 않고 머릿속은 아주 텅 빈 듯 하여 당신께 답...

光 前 벼 이삭 익기에는 당신의 소설에 대한 답신을 느지막이 보내기에 인내하지 못하여 급히 펜을 듭니다. 지난 이레간 늦더위에 날이 뜨겁다가 드디어 가을이 제대로 오려는지 선선한 바람이 낯을 훑습니다. 당신도 이 바람을 맞고 계실까요. 낮게 드리운 하늘을 눈으로 훑으며 편지를 쓰고 원고를 쓰는 지금이야말로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답신을 ...

光 前 그간 다망하였든지라 답신이 늦은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느새 8월이 다 지나가고 추석까지 지나가버렸지요. 이렇게 우리는 느리고 빠른 시간들을 지나치며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곧 노랗게 익은 벼들이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아 강의 물결처럼 너울거리겠지요. 황금빛 석양아내 너울거리는 노란 것들. 그 아래 깔린 자잘한 슬픔들. 땀흘려 빚어낸 결...

光 前 어느새 입추가 지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츰볕은 그리 뜨겁지 아니하지만 여전히 낮은 뜨거웁습니다. 더위가 심하여 지치실까 염려가 거듭됩니다. 보내주신 소설은 잘 읽었습니다. 어서 다음편을 써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八月 十日 海振으로부터.

光 前 친애하는 히카루상.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그간 마감이며 무어며 다른 일이 바빠 편지를 쉬이 쓰지 못하였드니 당신을 향한 그림움이 더욱 깊어진듯합니다. 진정 여름에 접어드니 창밖의 매미 울음이 기승입니다. 혹여 당신께서 낮잠 한줌 주무실 적에 방해가 되시진 않을까 걱정하고는 합니다. 별 쓸모 없는 걱정이려나 싶다가도 밤중에 글을 쓰실 생각을...

光 前 히카루상. 안온하신지요. 아츰부터 내리쬐는 햇살이 제법 날카롭습니다. 비가 오려는지 눈을 뜨기에도 버거울 만큼의 습한 바람이 불어오니 땅 속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향취는 일순간 바다의 내음과 흡사합니다. 우울한, 그리고 구슬픈 뻐꾸기의 울음과도 흡사합니다. 그 내음들이 얼룩진 폐 속으로 향하면 이내 일...

光 前 친애하는 히카루상. 녹음이 절정을 맞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六月 말이 다가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昨日이 夏至 였다지요. 今日부터는 차츰 해가 짧아지기 시작할텝니다. 해가 짧아지는 것이 눈이 어두운 제게는 서글픈 일이기는 합니다만 노을이 지는 것을 이르게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은 퍽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또 한 해의 반절이 지나가는구...

光 前 몇 차례 비가 지나가고 첫 편지인듯합니다. 그간 안온하셨는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께 드릴 원고의 교정을 보는 중이지요. 근래에는 몸이 괜찮으신지 잠은 잘 주무시는지 궁금합니다. 글은 잘 쓰이는지, 초여름에 나는 풋과일의 단내를 맡아보셨는지 궁금합니다. 六月 十日 海振으로부터

光 前 봄의 끝과 여름의 경계에 서 계신 당신께 드리는 오월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날은 점차 더워지고 온갖 풀벌레 울음이 창가에 내려앉는 새벽이면 저는 여전히 당신의 편지와 당신의 글을 그리워합니다. 때로는 그 고운 문장들이 햇살을 머금은 이파리의 그것과 같은 색으로 빛나기도 하고 곱게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들처럼 자그맣기도 합니다. 모든 풍경이 그렇게 빛...

光 前 히카루상. 오랜만의 편지입니다. 당신께서도 제 편지를 기다리시느라 조급하였을까 염려가 됩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문예지 마감이 조금 밀리다보니 당신을 우선으로 하지 못하였음을 미리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따금 당신과의 개인작업에 대해서 상상합니다. 서로 교정을 봐주고 서로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만을 보며 글...

光 前 당신이 이 서신을 받을 즈음이면 오월이 되었겠지요. 봄이 찾아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월이 끝나가니 아쉬움이 큽니다. 오월에는 또 어떠한 것들이 제 편지 위의 글자를 수놓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신을 향한 애정은 변함없을 겁니다. 글은 초록의 잎들처럼 원고지 위를 수놓겠지요. 당신을 애정하는 마음이 몹시 크고 그 마음은 초목의 푸르름보다도 청...